첫 단추가 문제였다. 막무가내로 엉뚱한 구멍에 첫 단추를 끼워놓았으니 사단이 나지 않을수 없는 법. 바로 끼우자 말자 옥신각신하다 멱살잡이까지 하는 과정에서 그 단추가 단추로서의 제 구실을 하기 힘든 불량품이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그런데도 몸 가리는데는 문제없으니 그냥 그대로 입고 다니라고 몰아세우는 이들에게 뭐라고 해야할까. 옷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거늘.

 

 그 여름의 햇살이 어느덧 12월 문턱을 넘고 있다. YTN 기자들을 비롯한 노조원들의 ‘낙하산 사장’ 출근거부 투쟁이 130일째를 넘어섰다. 10년전, IMF 겨울에 5개월이나 월급 한푼 받지 못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오늘의 YTN을 일궈낸 기자들에게 ‘해직기자’ ‘언론투사’의 꼬리표가 달렸다. 날치기 주총, 보복인사와 노사간의 고소고발전, 단식투쟁과 해고, ‘5공식 보도지침’ 논란 등 일상적인 언론사 상황에선 있을수 없는 일들이 YTN에서 속출하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끝까지 가보겠다는 구본홍 사장, 공정방송과 YTN의 미래를 위해 절대 무릎꿇을수 없다는 노조의 대치는 감정대립까지 더해져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언론장악 논란속에 진통이 장기화되면서 YTN 사태는 단순히 YTN 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언론의 핵심 현안, 국민적인 관심사로 부상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풀어야 할까. 

 

생각해보자. 24시간 보도전문채널인 YTN의 생명은 무엇인가. 신속하게,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이 그들의 핵심 임무다. YTN이 그간 방송의 색깔, 좌편향이냐 우편향이냐는 등의 논란에 전혀 휘말리지 않았던 것도 다소 거칠고 무색무취할지언정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하려 노력하다보니 공정성을 자연스럽게 구축한 결과다. 이번 사태 이전에 YTN이 방송의 편파성이나 노조의 강경 노선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적도 전혀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YTN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심대하게 훼손할수 있는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의 날치기 임명 강행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국민 일반의 상식에 반하는 선택에 YTN 구성원들로선 상식에 기초한 양심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YTN을 진정 위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방송사 사장 자리가 대선 승리 공신의 전리품이 되고, 방송사 사장을 하려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의 대선캠프로 달려가도록 만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구 사장이 지난 5월 사장추천위 심사과정에서 사장후보로 결정되는데 영향을 미친 경영계획서를 회사 간부가 사내 기밀사항까지 반영해 작성한 사실이 본인의 실토로 확인됐다. 이런 마당에 더 이상 절차적 당위성 운운하며 구 사장체제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설령 구 사장이 6인 해고를 포함한 33명 중징계의 수준을 뛰어넘어 추가적인 대량 해고와 경찰 투입 등의 강경책으로 사장실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장 업무 수행을 할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출장취재비를 아끼기위해 밤길을 달려 돌아오는 기자들에게 회사돈 수천만원을 고급호텔의 스위트룸 등에서 회의를 한다며 써버린 구 사장은 어떤 존재일까. YTN의 상징 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이 중단되든 말든 제작진을 해고해버리는 사장, 신성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압박의 수단으로 삼아 체불하는 사장에게서 과연 구성원들이 YTN의 미래와 희망을 발견할수 있을까.

 

 YTN이 특정 권력의 방송이나 정치무대로 뛰어든 폴리널리스트의 한풀이용 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면 답은 간명하다. 구 사장의 결자해지, 자진사퇴만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이면서 유일한 YTN 사태 해결책이다.




국민주권과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대한민국 언론인 시국선언


야만의 시대, 야합의 세월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았던 군사독재 정권의 망령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활개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와 민간부채 급증 등으로 서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세력은 자신들만의 ‘국가개조’를 위해 광분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기도하고 있는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과 감사원  ,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한 신공안정국 조성과정은 국민주권을 외면한 민간독재와 공포정치의 부활, 바로 그것이다. 소수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언론권력은 시민들을 자유와 자존의 광장에서 몰아내고 ‘그들만의 리그’로 한국사회를 재편하고 있다. 현 정권이 내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의 본질은 재벌 프렌들리, 수구 보수언론 프렌들리의 ‘패거리 한통속’에 불과하다.

보라!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언론 현실을. 관제사장 임명에 이어 비판적 기자와 PD, 기술인 등을 일선 제작현장에서 내쫓는 ‘보복성 대학살 인사’가 벌어진 KBS 사태, 환경감시기능에 충실했을 뿐인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를 문제삼은 권력의 막가파식 협박에 경영진이 굴복한 MBC 사태는 방송독립과 공영방송의 당위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음을 일깨워준 바 있다. 또 권력 실세들의 민영화 압박 등 지원사격 속에 자행되고 있는 ‘낙하산 사장 구본홍’의 YTN 장악에 맞서고 있는 YTN 언론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명박 정권의 야수성과 파렴치함을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와 문화부, 한나라당,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론화하고 있는 신문·방송 겸업허용을 비롯한 신문법 개정과 MBC·KBS2의 민영화, 대기업의 지상파방송·종합편성·뉴스전문채널 허용 확대추진 등은 무엇을 뜻하는가. 현 정권의 장기집권 가도를 열어줄 재벌방송과 조중동 방송 만들기를 위한 미디어지형의 전면재편 시나리오임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아울러 방송광고공사 해체와 민영 미디어렙 도입 역시 종교방송과 지역 민방은 물론 지역신문과 독립언론들을 고사시키고 대자본 중심의 광고시장 재편으로 여론 다양성을 파괴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와 함께 소비자 주권행위인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검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폭력적 대응,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 추진 등의 ‘인터넷 재갈물리기’는 역으로 이들 ‘어둠의 세력’들이 얼마나 민주주의의 햇볕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올해로 광복 63년, 정부수립 60년을 맞은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사회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인가. 진정한 주권자인 국민을 협박하고 분열시켜 자본과 권력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언론현업에 몸담고 있거나 전직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우리는 오늘 거짓이 진실을 내몰고, 불의가 정의를 짓밟는 정치권력의 폭압적 행태로 위기에 처한 국민주권과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떨쳐 일어섰다. 정치권력을 포함한 모든 부당한 권력의 전횡을 견제, 감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언론자유 수호의 책무는 바로 언론인 스스로에게 있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언론인들의 존재이유이며 숙명이다. 언론인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지켜달라고 호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30여년전 유신 독재정권의 야만적 언론탄압에 맞서 궐기했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정신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이명박 정권은 국민 주권을 유린하는 신공안정국 조성과 언론자유 탄압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2. 신문방송 겸업 허용과 민영 미디어렙 도입 등 국민의 방송을 재벌과 수구족벌신문들에게 넘기려는 책동을 즉각 중단하라.

3.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 청와대 대변인 이동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신재민 등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은 즉각 자진사퇴하라.

4. 이병순 KBS 사장, 구본홍 YTN 사장 등 ‘이명박표 낙하산’은 즉각 언론계를 떠나라.

5. 정권의 방송장악과 언론자유 유린에 부역하고 있는 언론계 인사와 집단들의 참회와 각성을 촉구한다.

6. 우리는 오늘부터 직종과 지역의 차이를 넘어 모든 언론인이 참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하며 이명박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2008년 9월 22일

국민주권과 언론자유 수호를 위한 대한민국 언론인
 시국선언 추진위원회



 "당해보면 안다"는 말을 뼈저리게 절감하는, 2008년 6월 대한민국이다.
 2년전 참여정부때다. 나는 '친여언론' '친노언론' '팔리지 않는 좌파신문'의 기자였다.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그랬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에 더해 무가지를 포함, 하루에 6백만부 가까이 쏟아붓다시피하는 언론권력의 '선고'는 곧 법이고 '진실'이었다. 신문법 논란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배치되는 보도를 한다고 해서 경향과 한겨레신문에 불문곡직 그렇게 '주홍글씨'를 새겼다. 조·중·동에게 '왜'는 중요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인 이라크 파병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등을 앞장서 지지하고 여론몰이 했던 것은 조·중·동이었다. 경향신문이 노무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추진에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가 우선"이라며 연이어 비판보도를 했던 것은 안중에도 없는듯했다. 참다 참다못해 "이성적으로 따져보니 조·중·동이야말로 친여언론"이라고 기사를 썼더니 일부 언론학자들이 물어왔다. "왜 그렇게 조·중·동과 싸워요?"라고. 나름의 '자위권' 행사조차 분란만 일으키는 시비로 비쳤던 모양이다.

 요즘 주변으로부터 2년전과 똑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처음엔 동일한 사안을 놓고 이렇게 다른 보도를 할수 있나 의아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싸우는 모양새'에 이래도 되나싶다는 것이다. 조·중·동에선 경향신문 등이 촛불시위를 부추키는 반정부세력, 반미세력의 일원인양 보도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들이 청와대, 정부, 한나라당과 함께 촛불시위대를 폭도로 몰아가며 '신공안정국' 조성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관훈저널' 여름호에는 MBC와 KBS, 경향과 한겨레신문 등을 '좌파언론'이라 부르며 '언론의 좌·우 대립'을 질타하는 글이 실려 파문이 일기도 했다.

 촛불민심은, 촛불집회에 대한 언론의 엇갈린 보도행태는 결코 보수와 진보,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주권이라는, 진실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영역에서 상식의 눈으로 접근할 일이다. 이 대통령과 집권층이야 일련의 사안에 색깔론을 덧씌워 국정 주도권을 되찾는 계기로 삼으려 하지만 퇴행적, 정치공학적 꼼수로는 '보편적 상식'을 언제까지 짓누를수는 없다. 청와대에선 최근 "진보와 보수가 완전히 갈리면서 보수진영이 다시 합쳐지고 있다. 촛불집회가 처음에는 우리에게 불리할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고 한다. 그들의 셈법앞에 과연 집권세력이 '국민통합'을 운위할 자격이 있는지 짙은 회의가 든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을 감시, 견제, 비판하는 언론의 사명 역시 정권의 주체가 누구이냐에 따라 춤을 춰서는 안되는 법이다. '미디어 전쟁'이라 할 정도로 언론들이 발가벗고 마주선 지금의 양상은 오히려 언론의 '옥석 구분' 호기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언론이 사안의 본질과 실재하는 진실을 외면하고 입맛에 맞는 행태만을 문제삼아 본질을 호도하는 거짓언론인지 국민과 독자들이 엄정하게 가려주기 바란다.